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에의 벚꽃 (문단 편집) ==== [[도쿠가와|도쿠가와 가문]] ==== ||<:> [[파일:yoshinobu.jpg|width=50%]] || ||<:> {{{#FFFFFF ''' 배역명 / 배우 ''' }}} || ||<:> {{{+1 {{{#e84d91 [[도쿠가와 요시노부|{{{#e84d91 ''' 도쿠가와 요시노부 [br] (徳川慶喜) '''}}}]] }}} }}} [br] {{{#e84d91 ([[고이즈미 고타로]][* 전 [[일본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장남이며, [[고이즈미 신지로]]의 형이다.] 분) }}} || [[에도 막부|도쿠가와 막부]] 제15대 [[쇼군]]이자 마지막 쇼군. 미토 도쿠가와의 다이묘인 나리아키의 아들. 쇼군 취임 이전의 이름은 히토츠바시 요시노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재래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지적인 인물이지만 좀처럼 본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처음에는 사츠마 등이 이에사다의 후계자로 요시노부를 지지하면서 이에모리와 후계자 자리를 두고 파벌 싸움에 휘말렸으나, 결국 이에모리가 쇼군에 취임하면서 동시에 요시노부 파들은 모두 실각했다. 이이 나오스케의 사후, 이에모리의 후견인으로서 정치권에 복귀한다. 제2차 조슈정벌을 전후로 이에모치가 사망하자 도쿠가와 종가를 상속받게 되었으나 재차 조슈정벌의 칙명을 받아 화려한 공적을 올린 후에 막부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상속을 거부했다. 하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 없어 결국 제15대 쇼군에 취임한다. 이듬해, 토막파(막부토벌 세력)의 전쟁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대정봉환이라는 또다른 정치 공작을 펼친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사쓰마가 신정부를 장악하게 되면서 요시노부의 내대신 관직과 영지의 반납을 요구하며 요시노부를 교토에서 추방한다. 사츠마의 지속적인 도발에도 흔들리지 않았지만 막부의 주전파들이 결국 도발에 넘어감으로서 어쩔 수 없이 전쟁을 결의한다. 동시에 병력을 둘로 나누어 토바 가도와 후시미에서 전투를 벌이지만 패배, 이어서 요도 번의 [[다이묘]]이자 막부의 로주(老中)이기도 한 이나바 가문이 신정부에 가세하면서 상황이 매우 어려워진다. 이러한 가운데 진보 슈리의 진언을 듣고 수많은 병사들을 버려두고, 카타모리 형제들만 데리고 에도로 도망간다. 에도에 도착한 후에는 아이즈를 에도에서 쫓아내면서까지 신정부에 복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로 인해 에도 총공격 하루를 앞둔 가쓰 가이슈와 사이고 다카모리와의 극비 회담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수십년 만에 [[메이지 덴노]]를 알현하면서 그동안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